배우 하영, 증조부 안상호 친일 행적 및 미화 논란
3줄 요약
TL;DR- 1배우 하영이 방송에서 증조부 안상호를 초기 서양의학 선구자로 소개했으나, 안상호의 대정친목회 활동과 친일 성향의 매일신보 인터뷰 등 친일 행적이 드러나며 논란이 일었다.
- 2이에 하영과 소속사는 기록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 3대한제국 정부가 안상호를 의학교 교관에서 해제했다.
사건 내용
배우 하영이 방송에서 증조부 안상호를 초기 서양의학 선구자로 소개했으나, 안상호의 대정친목회 활동과 친일 성향의 매일신보 인터뷰 등 친일 행적이 드러나며 논란이 되었다. 이에 하영과 소속사는 기록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안상호는 대정친목회 평의원 활동, 이토 히로부미 추모위원회 참여, 친일 성향의 언론 인터뷰 등 구체적인 친일 행적이 확인되었으며, 하영은 자필 사과문을 통해 반성과 사과의 뜻을 밝혔다.
루머 3건
- 미확인시기 미확인출처 1건
후손 책임 의혹: 조상의 정치적 선택과 도덕적 책임이 혈연을 통해 후손에게 승계된다는 사고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
블로그 글에서는 조상의 정치·도덕적 선택이 혈연을 통해 후손에게 승계된다는 사고방식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역사적 평가는 조상의 행적을 사실과 자료(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 『매일신보』 기사 등)로 검증해야 하지만, 그 책임을 후손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현대 법치는 책임을 개인에게만 귀속시키며, 혈통으로 승계되지 않는다. 따라서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친일 행적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하영은 그 행적에 대해 도덕적·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 미확인시기 미확인출처 1건
신문에 실린 표현 원인 의혹: 식민통치의 목적에 따라 특정 인물과 가정을 선전의 소재로 활용했을 가능성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 1918년 기사에서 안상호와 일본인 배우자의 생활을 소개하면서, 당시 식민당국이 강조한 내선융화(일본식 생활문화와 조선·일본인 결혼생활)와 연결해 선전하고 있다. 이는 신문이 식민통치 목적에 따라 특정 인물과 가정을 선전 소재로 활용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 미확인시기 미확인출처 1건
의사 안상호의 1918년 인터뷰 내용이 내선일체 사상을 옹호하는 뉘앙스를 풍겼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친일파 논란이 일었다.
안상호는 1918년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 실린 인터뷰에서, 일본인 아내와 함께 살며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 조선 옷은 한 벌도 입지 않고, 매운 음식도 조금도 못 먹는다”고 밝혀 내선일체(일본과 조선이 한 몸이라는 일제 정책) 사상을 옹호하는 듯한 뉘앙스를 드러냈다. 이 인터뷰 내용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안상호의 친일 논란이 촉발되었다.
루머 3건
- 미확인시기 미확인출처 1건
안상호가 1918년 매일신보 인터뷰에서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되었다.
소스에 따르면 안상호는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 미확인시기 미확인출처 1건
일부 매체는 안상호 관련 재산 및 기념시설(송덕비 등)에 대해 친일재산 환수 논의가 제기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안상호가 친일단체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등재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의 이름을 딴 송덕비 등 관련 시설이 친일 시설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부 매체는 안상호의 재산 및 김정·송덕비 등 기념시설에 대해 친일재산 환수 논의가 제기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으나, 현재 공식적인 조사나 법적 절차는 진행되지 않은 상황이다.
- 미확인시기 미확인출처 1건
배우 개인 책임 의혹: 증조부의 과거 행적에 직접적인 법적 책임을 지는 것
기사에 따르면, 배우 하영이 증조부 안상부의 친일 행적을 공개한 뒤 소속사는 처음에 ‘친일 행적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으나, 이후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등재된 기록을 확인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기사에서는 배우가 증조부의 과거 행적에 대해 직접적인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며, 이와 관련해 제기된 ‘연좌제’ 논란은 가족사의 역사적 평가와 여론상의 비판 차원에 머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루머 1건
- 미확인시기 미확인출처 1건
친일 논란 원인 의혹: 하영이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소개한 인물이 안상호로 확인되면서, 그의 일제강점기 행적을 둘러싼
하영이 방송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소개한 증조부가 실제로 일제강점기 의사 안상호(1872~1927)임이 확인되었다. 안상호는 1902년 일본에서 의사면허를 취득한 한국 최초의 의사로, 순종 전의로 활동했으며 1919년 고종이 위독했을 때 일본인 의사와 함께 진료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또한 그는 일제 친일 성향 단체인 대정친목회에서 평의원으로 활동한 기록이 존재한다. 이러한 이력 때문에 온라인에서 ‘친일 논란’이 제기되었지만, 안상호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았으며, 하영 소속사는 친일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공식 반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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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 1건
- 미확인시기 미확인출처 1건
불신 영향 의혹: 소속사가 기록을 충분히 확인하기 전에 의혹 전체를 “사실무근”이라고 단정했다가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꾼 것
소속사는 처음에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일제 친일 단체인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해당 친일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일방적으로 부인했다. 그러나 다음 날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안상호 이름이 등재된 기록을 확인했다고 발표하면서 입장을 바꾸고 사과했으며, 이는 기록을 충분히 검증하기 전 부정확한 결론을 내린 사례로 지적된다.
관련 루머 2건
- 미확인시기 미확인출처 1건
박승학은 안상호가 1914년 11월경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어머니를 위협해 토지 소유권을 이전받았다고 주장했다.
1923년 12월 28일 동아·조선일보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박승학은 경성지방법원에 안상호를 상대로 토지매매증명말소소송을 제기했으며, 그의 소장에 안상호가 1914년(대정 3년) 11월경 박승학이 집을 비운 사이 박승학의 어머니를 험악한 말로 위협해 토지 소유권을 자신에게 이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미확인시기 미확인출처 1건
박승학은 안상호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자신의 어머니를 험악한 말로 위협해 토지를 정상 매입한 것처럼 꾸며 증명서를 발급받았다고 주장했다.
1923년 12월 28일 동아·조선일보에 실린 ‘소유이전말소로 안상호 피소’ 기사에 따르면, 파주군 천현면 래문리에 있던 토지를 원래 박승학이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상호가 박승학의 어머니를 ‘세상 물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험악한 말로 위협해 토지를 자신이 정상적으로 매입한 것처럼 꾸며 관할 군청에 토지 매매증명서를 발급받았다고 박승학이 소장에서 주장했다. 이에 박승학은 안상호에게 증명서 말소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경성지방법원에 토지매매증명 말소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보도되었다.
안상호의 이완용 치료 행위가 친일 협력인가?
사실관계와 책임 범위를 둘러싼 쟁점입니다.
의사가 부상한 환자를 치료한 의료행위 자체를 정치적 지지행위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
의사가 부상한 환자를 치료한 의료행위 자체를 정치적 지지행위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
친일 단체 활동 및 이토 히로부미 추모 활동 등 다른 행적과 결부하여 볼 때 친일 성향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친일 단체 활동 및 이토 히로부미 추모 활동 등 다른 행적과 결부하여 볼 때 친일 성향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