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매일신보는 안상호를 일본식 생활을 받아들인 ‘내선가정의 성공자’로 소개했다.
이 보도는 안상호가 당시 일본식 생활을 수용한 인물로 인식됐음을 보여준다.
의혹이 정리되면 여기에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