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재산조사위 구성과 조사 활동 종료
3줄 요약
TL;DR- 12006년 위원회 구성부터 2010년 활동 종료까지, 친일재산 조사와 환수 작업을 진행하고 상설 기구화 건의가 무산된 과정.
- 22006년 친일재산조사위가 공식적으로 구성되었다.
- 3구성된 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재산 환수를 목표로 했다.
사건 내용
2006년 친일재산조사위가 공식적으로 구성되었다. 구성된 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재산 환수를 목표로 했다. 해당 연도에 환수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친일재산조사위)가 구성되어 환수 작업이 시작되었다.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친일재산조사위)가 구성되어 환수 작업이 시작되었다. 친일재산조사위 구성
루머 1건
- 미확인시기 미확인출처 1건
이해승이 작위를 받은 것 원인 의혹: 한일 병합 공로 때문이 아니라고
2010년 2심에서 서울고등법원 행정9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국가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특별법에 ‘한일 병합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자’를 친일반민족행위자 요건으로 규정했는데, 이 회장 측은 이 조항을 활용해 이해승이 작위를 받은 이유가 한일 병합 공로가 아니라는 주장을 제시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작위 수여가 병합 공로 때문이라는 주장을 기각했다. 대법원은 이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루머 1건
- 미확인시기 미확인출처 1건
진천군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주요 친일반민족행위자 7인이 해당 지역에서 729필지를 소유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진천군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주요 친일반민족행위자 7인이 해당 지역에서 총 729필지를 소유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구체적으로 민 대식이 141필지, 민 천식이 32필지, 이근호가 13필지, 이근홍이 146필지, 이항구가 5필지, 임선준이 37필지, 조중웅이 355필지를 보유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과거 친일재산조사위(2006~2010)의 조사는 충분했는가?
사실관계와 책임 범위를 둘러싼 쟁점입니다.
친일파 후손 재산이 다수 존재함에도 국가귀속 실적이 미비한 것은 2006~2010년 당시 정밀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친일파 후손 재산이 다수 존재함에도 국가귀속 실적이 미비한 것은 2006~2010년 당시 정밀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친일반민족행위자 1,006명 중 462명(45.9%)만을 조사하여 물리적인 조사 범위 자체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1,006명 중 462명(45.9%)만을 조사하여 물리적인 조사 범위 자체가 매우 제한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