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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안상호 가정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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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 요약

TL;DR
  1. 11918년 12월 매일신보는 안상호 가정을 ‘완전한 일본식 가정’이라 보도하였다.
  2. 2안상호는 조선 옷을 한 벌도 소유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3. 3그는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자녀들을 일본식으로 양육하고 있었다.

사건 내용

1918년 12월 매일신보는 안상호의 가정을 ‘완전한 일본식 가정’으로 소개했다. 안상호는 조선 옷을 한 벌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자녀들을 일본식으로 양육했다.

결
현황진행중

매일신보는 1918년 12월 안상호와 그의 가정이 일본식 생활 방식을 따르고 있음을 강조했다.

기록

관련 루머 5건

  • 미확인시기 미확인출처 6건
    안상호는 1919년 고종이 쓰러졌을 당시 일본인 의사와 함께 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에 따르면 안상호는 1919년 고종이 쓰러졌을 때 일본인 의사와 함께 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 미확인시기 미확인출처 7건
    고종에게 독약을 올렸다는 의혹 원인 의혹: 총독부의 사주를 받아

    일본 총독부의 사주로 고종이 독살당했다는 문건이 뒤늦게 발견됐으며, 이에 따라 안상호가 총독부의 지시를 받아 고종에게 독약을 투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 미확인시기 미확인출처 4건
    안상호가 일본 측의 사주로 고종에게 독약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안상호는 1919년 고종이 덕수궁에서 쓰러졌을 때 진료에 참여했으며, 이후 일본 측의 사주로 고종에게 독약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한국학중앙연구원은 관련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이 의혹의 진위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발표한 친일인명사전에도 안상호의 이름이 등재되지 않아, 해당 주장은 확증된 사실이 아니라 의혹 단계에 머물고 있다.

  • 미확인시기 미확인출처 6건
    논란 원인 의혹: 방송 프로그램 출연 중 질문에 응하는 과정에서 집안의 4대 의료가업 이력을 언급한 것

    보도에 따르면 하영은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 방송 중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문이 4대째 의료업에 종사하고 있음을 밝혔으며, 증조부가 일본 유학 후 한양에 서양식 병원을 개원하고 고종 황제를 진료한 이력을 소개했다.

  • 미확인시기 미확인출처 1건
    안상호 원인 의혹: 극단적인 황민화 생활로 인해 조선 민중의 깊은 불신과 증오의 대상

    안상호는 1916년 설립된 친일 단체 대정친목회의 평의원(21명 중)으로 명단에 올라 있어 친일 정책을 적극 지지·실행한 것으로 확인된다. 일제 통치에 협조하며 일본인 의사와 교류하고 ‘황민화’ 정책에 순응했으며, 1918년 매일신보 인터뷰에서 자신과 가족이 한복을 입지 않고 일본식 복장을 착용하고, 한국어 대신 일본어만 사용하며, 김치 등 한국 음식을 먹지 않고 일본식 식사를 고집하는 등 극단적인 일본화 생활을 자랑하였다. 또한 그는 을사오적 이완용을 치료한 의사로서 폐 상처를 봉합하고 8개월간 치료를 지속해 친일 인물의 생명을 살린 기록이 있다. 고종 사망과 관련해 영친왕비 이방자·일본인 관리 곤도 시로스케·덕혜옹주의 증언 등에서 안상호가 독극물을 투여했다는 소문이 전해져 당시 민중에게 큰 불신과 증오를 사고 있었다. 이러한 사료들은 안상호가 극단적인 황민화 생활을 하였으며, 그 결과 조선 민중에게 깊은 불신과 증오의 대상이 되었음을 입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