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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소록도 실태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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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 요약

TL;DR
  1. 1국가인권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1949년 당시 소록도 수용 환자는 약 6100명이었으나 출생아는 45명에 불과했다.
  2. 2국가인권위원회 소록도 실태 조사

사건 내용

국가인권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1949년 당시 소록도 수용 환자는 약 6100명이었으나 출생아는 45명에 불과했다.

현황진행중

국가인권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1949년 당시 소록도 수용 환자는 약 6100명이었으나 출생아는 45명에 불과했다.

미확인

소록도 병원의 일부 환자는 나균 검출 실험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에 따르면 소록도 병원에서는 환자 가슴에 침을 삽입해 골수에서 나균을 검출하는 실험을 진행했으며, 이 실험이 환자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겼다고 기록돼 있다. 또한 해당 실험 후 일부 환자는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명시하고 있다.

미확인

안부호 교수가 근무하던 시기 소록도병원에서는 한센인을 대상으로 강제 격리, 단종(정관수술), 낙태 등 인권침해가 계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에 따르면 안부호 교수가 1949년부터 1952년까지 소록도병원에서 한센병을 연구하던 시기에, 해당 병원에서 한센인을 대상으로 강제 격리와 단종(정관수술), 낙태 등 인권침해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 자료가 그 시기의 환자 수와 출생아 수 등을 제시하며 실태를 뒷받침한다. 다만 안 교수가 이 인권침해 행위에 직접 가담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미확인

1950년대 초 소록도병원에서 환자의 가슴에 침을 꽂아 골수를 채취하는 나균 검출 실험이 이뤄졌으며, 일부 환자는 이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사에 따르면 1950년대 초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한센병(나균) 검출을 위한 골수 채취 실험이 진행됐으며, 환자의 가슴에 침을 꽂아 골수를 채취하는 방식이었다. 이 실험을 받은 일부 환자는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사망 환자의 시신이 유족 동의 없이 해부 실습 등에 이용된 기록도 남아 있다. 다만 해당 인권 침해에 안상호 교수가 직접 가담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