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호의 친일 행적은 사실인가?
사실관계와 책임 범위를 둘러싼 쟁점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에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안상호의 이름은 등재되어 있지 않다.
안상호는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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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따르면 안상호는 1919년 고종이 쓰러졌을 때 일본인 의사와 함께 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 기사에 따르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친일 행적을 가졌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하영 소속사인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는 증조부의 친일 의혹은 사실 무근이라며 부인했다. 하영은 방송에서 증조부가 일본 유학 후 한양에 서양식 병원을 처음 개원하고 고종 황제도 진료했다는 점을 밝혀, 4대 의사 가문임을 강조했다.
기사에 따르면 안상호는 1919년 고종이 덕수궁에서 쓰러졌을 때 진료에 참여했으며, 이후 일본 측의 사주로 고종에게 독약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한국학중앙연구원은 관련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이 의혹의 진위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발표한 친일인명사전에도 안상호의 이름이 등재되지 않아, 해당 주장은 확증된 사실이 아니라 의혹 단계에 머물고 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1919년 1월 22일 고종이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당시 궁중 의사였던 안상호와 일본인 의사 모리야스 랜치키가 가장 먼저 호출되어 진료에 나섰다. 진료 직후 고종이 사망하면서 ‘고종 독살설’이 급속히 퍼졌으며, 안상호가 일본인의 지시를 받아 독약을 투여했거나 직접 살해에 연관되었다는 주장과 소문이 민중 사이에서 떠돌았다. 그러나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역사 연구 기관은 안상호가 일제 지시에 따라 독살을 실행했는지에 대한 구체적·명확한 사료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은 역사적 의혹에 불과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YTN 보도에 따르면 배우 하영은 인터뷰에서 4대째 의사 집안임을 밝히며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사실을 인정받았다. 초기에는 친일 행적이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지만, 1918년 조선총독부 신문과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 등 100여 년 전 기록이 확인되면서 안상호가 친일 성격의 단체인 ‘대정친목회’에 참여한 사실이 인정되었다. 다만 안상호는 정부 공식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이나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다.
사실관계와 책임 범위를 둘러싼 쟁점입니다.
사실관계와 책임 범위를 둘러싼 쟁점입니다.
극단적인 왜색 생활과 총독부 정책 추종 성향을 보였던 안상호가 독살의 수행자 또는 조력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역사 연구 기관에 따르면, 일제 지시로 독약을 투여했다는 명확한 사료적 증거는 밝혀지지 않았다.
사실관계와 책임 범위를 둘러싼 쟁점입니다.
안상호가 일본인 의사 키쿠치 타로 등과 함께 수술과 응급 치료에 핵심적으로 참여하여 이완용의 목숨을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