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호의 친일 행적은 사실인가?
사실관계와 책임 범위를 둘러싼 쟁점입니다.
1902년에 안상호는 도쿄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근대 의료계 인물로서의 기반을 마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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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총독부의 사주로 고종이 독살당했다는 문건이 뒤늦게 발견됐으며, 이에 따라 안상호가 총독부의 지시를 받아 고종에게 독약을 투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뉴스 기사에 따르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친일 행적을 가졌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하영 소속사인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는 증조부의 친일 의혹은 사실 무근이라며 부인했다. 하영은 방송에서 증조부가 일본 유학 후 한양에 서양식 병원을 처음 개원하고 고종 황제도 진료했다는 점을 밝혀, 4대 의사 가문임을 강조했다.
블로그 내용에 따르면 1918년 매일신보에 실린 안상호 인터뷰에는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 그의 가정생활과 일본식 생활 방식이 묘사되어 있다. 특히 그는 자신을 ‘일본 사람과 같다’고 표현하고, 조선 옷을 입지 않으며 일본식 생활을 하고 있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와 같은 발언이 온라인에서 친일 논란으로 제기되었다.
안상호는 1916년 설립된 친일 단체 대정친목회의 평의원(21명 중)으로 명단에 올라 있어 친일 정책을 적극 지지·실행한 것으로 확인된다. 일제 통치에 협조하며 일본인 의사와 교류하고 ‘황민화’ 정책에 순응했으며, 1918년 매일신보 인터뷰에서 자신과 가족이 한복을 입지 않고 일본식 복장을 착용하고, 한국어 대신 일본어만 사용하며, 김치 등 한국 음식을 먹지 않고 일본식 식사를 고집하는 등 극단적인 일본화 생활을 자랑하였다. 또한 그는 을사오적 이완용을 치료한 의사로서 폐 상처를 봉합하고 8개월간 치료를 지속해 친일 인물의 생명을 살린 기록이 있다. 고종 사망과 관련해 영친왕비 이방자·일본인 관리 곤도 시로스케·덕혜옹주의 증언 등에서 안상호가 독극물을 투여했다는 소문이 전해져 당시 민중에게 큰 불신과 증오를 사고 있었다. 이러한 사료들은 안상호가 극단적인 황민화 생활을 하였으며, 그 결과 조선 민중에게 깊은 불신과 증오의 대상이 되었음을 입증한다.
블로그에 따르면 안상호 박사는 고종 황제를 직접 진료한 인물로, 고종이 사망할 때 일본인 의사와 함께 진료를 받았던 기록이 남아 있어 ‘고종 독살에 관여했는가’ 하는 의혹이 제기된다. 또한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안상호가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고 발언한 내용이 남아 있어 친일 성향이 드러난다. 그는 1916년에 일제가 조직한 친일 단체 ‘대정실업친목회’의 창립 멤버이자 평의원으로 활동한 사실도 확인된다. 이와 같은 친일 행적과 고종 진료 기록을 근거로 안상호가 고종 황제 독살설에 연루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블로그는 1918년 일제조선 총독부가 발행한 매일신보에 안상호가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고 일본식 생활을 찬양한 발언이 실렸다고 인용한다. 또한 안상호는 1916년에 일본이 주도한 친일 단체 ‘대정실업친목회’의 창립 멤버이자 평의원으로 활동했으며,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이 그의 친일 행적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게다가 그의 일본인 부인은 조선에 11년 머물면서도 한국어를 전혀 쓰지 않았다고 전한다.
기사에 따르면 배우 하영이 방송에서 증조부 안상부를 자랑한 뒤, 안상부가 1916년 친일단체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등재된 기록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증조부의 친일 행적이 사실임을 보여주지만, 명단 등재 자체가 곧바로 특정 행위에 대한 법적 처벌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역사적 평가와 법적 판단은 별개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사에서는 ‘연좌제’ 논란이 제기되고 있으나, 배우가 증조부의 과거 행적에 대해 직접적인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계획상 고종은 죽어서는 안 되었다. 따라서 안상호가 독살을 했을 가능성뿐 아니라 고종이 독살됐다는 설 자체도 신빙성이 별로 없다고 한다.
해당 기사에서는 안상호가 친일단체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등재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의 이름을 딴 송덕비 등 관련 시설이 친일 시설로 재조명되고 있다. 국내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를 통한 재산 환수 전례가 존재하며, 이에 대해 일부 매체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안상호 관련 재산·기념시설에 대한 유사한 환수 논의가 제기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1918년 매일신보에 실린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안상호는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 뒤 조선 옷을 입지 않고 일본식 생활을 하며 자신을 일본 사람과 같다고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관계와 책임 범위를 둘러싼 쟁점입니다.
사실관계와 책임 범위를 둘러싼 쟁점입니다.
이방자 여사의 수기와 곤도 시로스케의 회고록 '이왕궁비사' 등에 총독부의 명령으로 독을 사용했다는 소문과 기록이 존재한다.
의친왕이 안상호의 입진을 직접 보았다며 독살설을 일축했고, 역사 연구 기관에서도 명확한 사료적 증거가 없다고 설명한다.
사실관계와 책임 범위를 둘러싼 쟁점입니다.
공식 기관이나 신뢰할 수 있는 매체를 통해 친일파로 확정되거나 공식 확인된 바는 없다고 주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