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안상호, 일제강점기 고액 보수 및 친일 특혜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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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 요약

TL;DR
  1. 1일제강점기 이왕직 어용괘로 근무한 안상호가 당시 일반 의사나 노동자보다 월등히 높은 월급(225원)을 받았다는 기록이 알려지며 친일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2. 2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 행적이 분명하다는 입장이지만, 배우 하영의 소속사는 사실무근이라며 맞서고 있다.
  3. 3안상호는 1904년 10월 의학교 교관으로 임명되었다.

사건 내용

일제강점기 이왕직 어용괘로 근무한 안상호가 당시 일반 의사나 노동자보다 월등히 높은 월급(225원)을 받았다는 기록이 알려지며 친일 특혜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 행적이 분명하다는 입장이지만, 배우 하영의 소속사는 사실무근이라며 맞서고 있다.

결
현황진행중

안상호의 고액 보수 기록과 대정친목회 활동, 이토 히로부미 추도회 참여 등의 행적이 확인됐다. 다만 이를 공식적인 친일 행위로 단죄할지를 두고 학계의 신중론과 당사자 측의 부인이 교차하며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190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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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용환 소장은 안상호가 식민지 지배에 순응하고 적당히 일제와 결탁하며 영화를 누렸던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심용환 소장은 안상호가 식민지 지배에 순응했고, 의료 보급 외 영역에서는 일제와 적당히 결탁하며 영화 등을 즐겼다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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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란의 무게가 커지는 것 원인 의혹: 친일단체로 평가되는 대정친목회 활동 기록까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

    블로그 글에 따르면 안상호는 1916년 11월 29일 대정실업친목회(줄여서 대정친목회) 설립 당시에 윤치호·유병필 등과 함께 평의원으로 참여한 기록이 존재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대정친목회를 ‘1916년 서울에서 조직된 친일 단체’로 정의하고, 일제가 이 조직을 통해 친일 통치 논리를 전파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스포츠경향 보도와 관련 학술연구에서도 안상호의 대정친목회 평의원 활동을 확인했으며,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은 이 기록을 근거로 안상호를 친일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따라서 ‘친일단체로 평가되는 대정친목회 활동 기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논란이 커지는 주요 원인이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가 된다.

  • 미확인시기 미확인출처 1건
    안상호가 고종의 사망 당시 진료에 참여했다는 사실 때문에 관여했다는 주장 원인 의혹: 고종 독살

    안상호는 대한제국 말기에 왕실 의료진으로서 고종 황제의 진료에 참여한 기록이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그러나 고종이 독살당했다는 주장과 안상호의 관여 사이에 관한 구체적인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관련 보도에서도 고종 독살 가담설을 뒷받침할 명확한 근거가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안상호가 고종 사망 당시 진료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만, 그가 독살에 관여했다는 주장은 현재로서는 증거가 부족한 주장이다.

  • 미확인시기 미확인출처 1건
    논란이 하영에게까지 번진 이유 원인 의혹: 하영이 여러 차례 자신의 의료인 가족사를 공개하면서 이를 긍정적인 가족 배경으로 소개했기 때문

    하영은 방송과 인터뷰에서 증조부 안상호를 비롯해 4대째 의사 집안임을 여러 차례 강조하며 가족사를 긍정적으로 소개했다. 특히 8월 7일 KBS2 예능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밝히고, 증조부가 일본에서 의학을 배워 고종을 진료한 의사 안상호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이러한 공개가 이후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어 안상호의 친일 논란과 연결되면서, 하영 개인에게까지 논란이 확대된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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